내 취향의 집합

내 취향의 집합

2019.07

발코니가 있는 150㎡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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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 일기장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부부의 취향으로 채운 아파트. 정민정 씨 부부는 첫 집에서의 시간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꼭 어울리는 두 번째 집을 꾸몄다. 그리고 지금,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즐겁다.



내 취향의 집합



아킬레 자코모 카스틸리오니가 디자인한 프리스비 펜던트와 한스 올센의 테이블로 꾸민 다이닝룸. 장미목으로 만든 테이블은 컬렉트바이알코브에서 구입한 제품으로 모든 인테리어의 구심점이 된다. 식탁 너머에는 홈 카페를 꾸몄는데, 때에 따라 슬라이딩 도어로 완벽히 가릴 수 있다.



거실과 서재 사이의 벽을 터 하나의 개방적인 공간으로 완성했다. 정민정 씨와 남편은 집에 있는 날에는 대부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 식탁과 같은 톤의 소파와 수납장을 고르고 짙은 회색 타일로 세련된 분위기를 완성했다. 블랙&화이트 문이 매력적인 장미목 수납장은 원오디너리맨션 제품.



집에서 가사를 가장 많이 하는 공간인 주방은 기능성에 초점을 맞춰 설계했다. 정면에 보이는 작은 창은 채광을 좋게 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었는데, 생산한 지 60년 가까운 장미목 테이블에 맞춰 나왕 합판을 착색해 프레임을 제작했다.


IT업계에 종사하는 정민정 씨 부부는 지난겨울, 옥수동의 한적한 동네로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한 45평 규모의 아파트는 건물이 하나뿐이어서 세대수가 적어 단출하고,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창 너머로 산과 강이 모두 바라보인다. 눈앞에는 붉은 지붕이 층층을 이루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이전에 살던 집은 커뮤니티가 잘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어요. 하지만 저와 남편에게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쉬는 날에는 집 안에만 있는 편이라 단지 내 시설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고, 오히려 아파트의 일률적 인테리어가 고루하게 느껴지기도 했지요.” 훗날 집을 짓고 싶은 바람도 있던 두 사람은 아파트의 편리함과 여유로운 주택살이를 간접경험할 수 있는 절충안으로 이 집을 택하고, 체크인플리즈스튜디오의 김혜영 실장과 함께 조금은 남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두 번째 집을 그려나갔다. 




내 취향의 무드 보드를 만들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취향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트렌디하고 예쁜 가구를 알아볼 순 있어도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물음표가 붙을 때가 많다. 김혜영 실장과의 작업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설문 조사와 기존 살림을 점검하는 것은 물론, 레퍼런스 이미지를 고르고 또 고르며 최종까지 남은 ‘취향의 조각’을 조합해 그들만의 무드 보드를 완성하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생활(기능)과 아름다움(디자인)의 조화를 고려해 공간마다 강약을 조절하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 “집주인의 취향을 알아가는 시간을 전체 과정 중 가장 비중을 두는 편이에요. 거기에서 모든 디자인을 시작하기에 매 현장이 다른 분위기로 완성될 수밖에 없지요. 이 과정을 통해 두 분은 자연스러운 질감, 인위적이지 않은 요소, 깨끗한 라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한 걸음씩 따라가 보니 그 끝에는 어떠한 시대성이 있었어요. 빈티지 가구, 금속 소재의 모던한 조명등, 클래식한 마감. 바로 1960~1970년대 미드센추리 모던 스타일이지요.” 


스타일의 방향이 잡히자 김혜영 실장은 부부에게 빈티지 가구 매장 몇 곳을 추천해주었다. 바쁜 와중에도 짬짬이 시간을 내 가구를 보러 다닌 부부가 고심 끝에 고른 첫 가구는 덴마크의 가구 디자이너 한스 올센Hans Olsen이 1960년대에 디자인한 다이닝 테이블이었다. “이 가구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이 참 좋았어요. 테이블과 의자가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에서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요. 게다가 장미목은 더 이상 벌목을 할 수 없어 소장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잘 모르고 보았을 때도 첫눈에 귀한 가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스 올센의 테이블을 중심으로 퍼즐을 맞추듯이 인테리어가 진행되었다. 빈티지 가구와 어울리는 천연 가죽 소파를 고르고, 바워스앤윌킨스의 나무 스피커를 거실로 옮겨온 뒤 그와 형제처럼 닮은 요스 더 메이Jos De Mey의 장미목 수납장을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가구가 돋보이도록 바닥은 짙은 회색의 타일을 깔았는데, 면적이 넓고 대리석 무늬가 있는 타일을 시공해 단정하면서도 클래식한 무드의 공간이 탄생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우측으로 창문과 긴 수납장이 눈에 들어온다. 본래 서재로 들어가는 문이 있었는데, 거실과 서재를 연결하면서 이곳에 벽체를 세우고 수납장을 설치했다.



프라이빗하게 꾸민 침실. 바닥은 월넛 사각 마루를 깔아 더욱 클래식하게 완성했다.



비투프로젝트에서 찾은 벨기에 알리 베르트의 원형 거울로, 1970년대 레트로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오가며 눈에 자주 띄는 곳에는 부부가 좋아하는 물건으로만 채웠다.



집 안 곳곳에서 마주한 에르제 땡땡 피겨. 무언가에 푹 빠져 있다면 집을 꾸미는 일이 한결 즐거워진다.



아담한 창은 그늘진 공간에 햇빛을 끌어들이고, 집의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집은 곧 쉼이다 


재즈와 옛날 음악, 일본 라디오 방송을 좋아하는 남편과 일렉, 하우스, 힙합을 즐겨 듣는 아내. 부부는 관심사와 취미가 서로 달랐지만 함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는 것이 또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취미도, 취향도 분명한 부부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넓고 개방적인 공간을 원했다. 김혜영 실장은 집에서 볕이 가장 잘 드는 방을 서재로 꾸미고, 서재와 거실 사이의 벽을 터서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했다. 이곳에서 부부는 매일 따로 또 함께 시간을 보낸다. 책과 음악 CD를 정갈하게 꽂아둔 나무 선반, 걸터앉아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벤치, 숲을 바라볼 수 있도록 창을 향해 배치한 책상, 앉으면 시야가 탁 트이며 하늘이 바라보이는 소파. 좋아하는 요소가 어우러져 가장 애정을 느끼는 공간이 되었다. 곳곳에 설치한 간접조명과 브래킷에서 낮과 다른 밤의 풍경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를 보는데 늦은 밤의 호텔 룸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디자이너에게 그런 포근한 공간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는데, 조도 설계에 반영해주셨지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소파 옆 커다란 플로어 램프와 식탁등을 먼저 켜고, 나머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선택해요. 따스한 불빛이 위로해주는 그 시간이 저희에게는 커다란 행복이에요.”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고 나에게로 돌아가는 시간은 부부에게 꼭 필요했다. 부부의 침실은 가장 안락한 분위기로 프라이빗하게 꾸몄다. 침실로 향하는 문 앞에는 전실을 만들고 동선을 따라 드레스룸과 파우더룸을 구성했다. 침실은 벽과 천장은 화이트 톤으로, 바닥은 폭이 좁은 월넛 사각 마루를 교차해 깔아 클래식한 느낌으로 완성했다. 벽면에는 수납장을 짜 넣고 반대쪽 벽에 침대를 배치해 아늑함을 살리면서도 공간 효율성을 높였다. 체계적 수납 아이디어는 주방에서도 여지없이 빛을 발했다. 김혜영 실장은 요리를 좋아하는 부부를 위해 주방의 규모를 넓히고 ㄷ자 주방 가구를 배치했다. “주방은 워낙 살림이 많아서 평소 깔끔하게 유지하기 어려운 공간이에요. 수납이 받쳐줘야 하기에 안쪽 벽에 모던한 상부장을 설치했지요. 주방을 기능적으로 꾸미는 대신 디스플레이를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테이블 옆에 홈 카페를 꾸며드렸어요.” 


슬라이딩 도어를 열면 비밀스럽게 숨어 있는 홈 카페가 등장한다. 1mm의 오차도 없는 설계와 꼼꼼한 시공이 빚은 반전 매력이랄까. 집의 감도를 높여주는 건 이처럼 사려 깊은 디테일이다. 집 안 곳곳에 채광이 좋도록 개방적인 레이아웃을 짜고 벽에 창을 만들면서도 공간의 경계에서는 천장의 단을 내리거나 벽체를 활용해 음영을 부여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창문 프레임과 선반을 제작할 때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빈티지 가구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도록 나왕 합판을 한 번 더 착색하는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았다. 화려한 컬러, 이질적인 질감 등 시선을 붙잡아두는 요소를 최대한 배제해 지극히 ‘평범한’ 집을 완성한 김혜영 실장. 하지만 매일을 살아가는 이에게는 평범한 집이야말로 나의 취향을 담을 수 있는 편안한 집이 된다. 오늘 밤에도 옥수동 아파트는 따스한 조명 빛과 감미로운 재즈 선율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혜영은 케이디에이 그룹과 투래빗디자인에서 실무를 익히며 다수의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을 디자인했다. 스무디킹코리아의 공간 디자인을 담당하며 글로벌 매뉴얼 및 플래그십 스토어를 리뉴얼했으며, 그 외에도 다수의 식음 공간 브랜딩을 경험했다. 현재는 경리단길에 체크인플리즈라는 미니 호텔과 함께 체크인플리즈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며, 말랑말랑하고 감성적인 공간을 꿈꾸면서 컨셉추얼한 상업 공간과 주거 공간의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