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의 디자인 한옥

신혼부부의 디자인 한옥

2019.05

인왕산의 풍광을 끌어 안은 하연재夏燕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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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정기 구독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30대 부부가 보낸 메일 한 통이 편집부에 도착했다. 행복작당을 보고 북촌 한옥마을에 신접살림을 꾸몄으니 놀러 오라는 초대장이었다. 봄꽃이 만개한 인왕산의 풍광을 끌어 안은 하연재夏燕齋에서 젊은 부부의 리얼 한옥 라이프를 들을 수 있었다.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주방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인왕산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하다. 가구와 조명등은 부부가 고심해서 고른 디자인 제품이 꾸몄다.




여름 제비는 좋은 손님을 데려온다는 의미를 담아 지은 하연재 현판 앞에서 두손을 맞잡은 부부. 매일 아침 마당에서 인증샷을 찍어 소소한 일상을 기록한다.



신혼집이 한옥이라니! 

하연재에는 강서구의 평범한 아파트에서 자란 여자와 북촌 한옥마을에서 자란 남자가 산다. 1940년대 계획 개발된 보급형 한옥인 이곳은 남편 여병희 씨의 부모님이 매입해 직접 고치고 다듬으며 살아온 가족사의 근거지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 어른들에게 북촌의 이모저모를 들으며 자라온 병희 씨의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예쁘게 고쳐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남아 있었다. 한옥에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아내 이소영 씨에게는 큰 결심이 필요한 문제였다. 실제로 천장이 낮아 답답한 느낌이 들었고, 단열 공사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추웠다. 요즘 세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 



"실내를 현대적으로 고친다면 크게 불편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콘크리트와 나무의 물성만큼 다르던 두 사람의 의견이 하나가 되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행복작당이다. “2016년 신혼집을 마련하기로 했을 때, 이 집을 팔고 좀 더 살기 편한 동네로 가고 싶었어요. 서울을 구석구석 쏘다니던 어느날 행복작당이 열려 지우헌에 갔는데 제가 생각하던 한옥과 완전히 달랐죠. 실내를 현대적으로 고친다면 크게 불편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계와 시공은 가은앤파트너스 이문호 소장이 맡았다. 성북동 가구 박물관의 한옥 총괄 책임자였던 그는 방송인 마크 테토가 살고 있는 평행재, <행복>에도 소개한 심심헌 등 북촌 일대의 스무 채가 넘는 한옥을 설계하고 시공했다. “어느 날 병희 씨 어머님이 아들이 살 집으로 고쳐달라고 하셨어요. 북촌 이곳저곳을 고치다 이웃처럼 친해진 분이에요.” 이문호 소장은 집을 본래 모습으로 복원하는 데 힘을 쏟았다. 공간을 확장하기 위해 덮어 쌓은 빨간 벽돌은 거둬내고, 실내의 철골 구조도 제거하고 기둥을 세웠다. 썩은 기둥을 골라 튼튼한 것으로 교체하고, 지붕 아래에는 단열재를 신경 써서 시공했다. 기와지붕은 일부를 거둬내고 ㅁ자로 고쳐 마당을 마련했다. 지하에 사는 병희씨 어머니의 의견으로 내부 계단을 없애고 지하와 지층을 분리했다. 



가파른 대지에 위치한 복층 한옥. 이전에는 지하와 지층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분할해 지하는 어머니의 집과 디자인 스튜디오 사무실로 사용 중이다.




주방은 최대한 간결하게 꾸몄다. 개수대 위 작은 창을 낸 것은 이문호 소장의 아이디어로 아내 이소영 씨의 시야에 삼청동 풍경이 소담하게 들어온다.




책장과 소파를 둔 서재 한편에는 아버지가 병희 씨에게 선물한 고미술품과 부부의 향수를 전시했다.




침실에는 문 대신 인사동에서 구입한 조각보를 걸어두었다.


40년이 넘는 세월의 더께를 걷어내고 본래의 말간 얼굴을 드리운 하연재에서는 집을 아끼는 부부의 신중한 취향이 묻어난다. “결혼식은 2년 전에 했는데, 같이 산 지는 이제 8개월 됐어요. 한옥은 허가받을 것도, 보수할 것도 많아 공사 기간이 예상보다 오래 걸렸거든요. 그동안 여러 잡지를 읽고, 한옥을 찾아다니며 인테리어를 어떻게 꾸밀지 구상했어요.”


22평 규모의 실내는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철저하게 반영해 나눴다. 출근 시간이 같고, 옷을 좋아하는 부부의 욕실과 옷방은 양쪽 복도에 하나씩 마련했다. 대청은 부부가 고심해서 고른 디자인 가구로 채웠는데, 디앤디파트먼트에서 중고로 구입한 USM 시스템 선반과 프리츠 한센 세븐 체어, 톤의 이로니카 체어를 배치해 모던하게 꾸몄다.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서쪽 주방 창문을 바라보면 인왕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침실은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동시에 햇살이 고르게 들어오도록 삼면에 작은 창문을 조르르 설치했다. 침실 반대편 동쪽 끝 방은 다용도실인데 쓰지 않는 물건을 보관하거나 세탁실로 사용 중이다. 



집 안 곳곳에서 한옥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디자인 가구를 고르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느껴진다.




같은 시간대에 출근 준비를 하는 부부는 화장실을 두 개 만들었다. 이곳은 병희 씨의 전용 화장실로 2017년 <행복> 창간호 독자 선물 대잔치에 응모해 받은 박대성 작가의 글씨 작품이 걸려 있다.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테라스 공간. 인왕산을 품은 삼청동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한옥은 판타지가 아니다 

한옥살이에 대한 환상이 커지려는 순간, 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인터뷰 중 갑자기 비가 내린 것이다. 부부는 서둘러 마당 회벽에 비닐을 걸어두었다. 회벽에 빗물의 때가 묻지 않도록 벽 크기에 맞춰 준비해놓은 것이다. “소장님과 어머님, 남편 모두 이 집을 짓느라 고생했거든요. 30~40년은 더 살아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망가지면 너무 아깝잖아요. 최대한 아끼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옥에서 살려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소영 씨 말대로 살아가면서 평생 고쳐야 하는 것이 한옥이라고 말한다. 뒤틀리고 벌레가 꼬이는 소나무 기둥도, 대문을 열어두면 마당으로 불쑥 들어오는 관광객도, 감수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북촌 한옥마을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는 집은 많지 않다. 대부분 상업 공간이 되거나 투기를 목적으로 구입해놓은 빈집도 많다. 주차장이나 편의점, 버스 정류장도 꽤 걸어나가야 한다. 주말에 광화문에서 시위라도 벌어지면 약속 시간에 늦기 일쑤다. 



"한옥을 지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선택지가 적다는 거였어요.

함께 공동 구매도 하고, 더 나은 한옥 생활을 모색하고 싶어요."



가장 아쉬운 점은 아름다운 한옥 생활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 한옥에 어울리는 에어컨 장을 짜거나 주련을 새기고 싶어도 가격이 비싸 선뜻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옥을 지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선택지가 적다는 거였어요. 일본 잡지 <뽀빠이>나 <까사 브루투스>를 보면 일본 전통 가옥에 적용할 수 있는 시공 사례가 다양했거든요. 그래서 한옥에 사는 젊은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함께 공동 구매도 하고, 더 나은 한옥 생활을 모색하고 싶어요.” 한옥을 짓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물으니 즉각 답변이 돌아온다. “한옥 학교에 가세요. 저는 집 짓기 전에 북촌에서 하는 서울시민한옥학교를 다녔어요. 북촌의 역사와 한옥의 특성을 미리 알게 되니 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더 잘 통하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모색하는 젊은 부부의 앞으로의 한옥살이가 더 기대된다. 




가은앤파트너스의 대표 이문호 건축가는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후 10년간 서양 건축에서 경력을 쌓았고 2000년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우연히 한옥 건축 업무에 합류한 뒤로 한옥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지요. 한국가구박물관·성북동 한옥마을의 건축실장을 지내며 쌓아온 내공 으로 북촌과 서촌에 스무 채가 넘는 한옥을 설계·시공했습니다. 재능 그룹 율수원은 국토교통부 주최 2013년 대한민국 한옥 공모전 건축 부문 한옥 대상을 수상했습니다.